중학교까지 다녔던 고향마을에는 닷새마다 열리는 오일장이 있었다. 없는 것 빼고는 다 판다는 만물시장부터 어물시장과 옷가게,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파는 노점, 살아있는 닭, 오리, 토끼, 거위, 돼지를 파는 가축시장,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까지 그 규모도 컸다. 시장 한쪽 구석에는 농기구를 수리하고 만드는 철공소도 있었고, 고춧가루를 빻고 참기름을 짜는 곳, 꽉 찬 손님들로 왁자지껄한 국밥집, 남녀노소 불문하고 발길을 멈추게 하는 국화빵, 붕어빵, 술빵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었다
장날이 되면 빠지지 않고 열리는 또 다른 볼거리도 있었다. 바로 만병통치약을 판다는 약장수들의 쇼다. 원숭이 한 마리 묶어 두고 맥주병을 깨 멍석 위에 깔아놓은 뒤 차력사가 그 위에 누웠다. 그리고 배 위에 돌을 올려놓고는 해머로 치는 장면은 차마 볼 수 없어 얼굴을 가렸던 순간, 장고를 신명 나게 치던 광대들이 짧은 맛보기 묘기를 보여주었다. 이어서 긴 약 선전과 판매하는 지루한 시간을 쪼그려 앉아 언제쯤 다시 원숭이가 재주를 부리고 차력사가 등장할까 기대하다 지쳐 돌아오곤 했던 그 장터는 내 삶에서 한편의 동화다.
4km 떨어진 초등학교에 가는 길, 초등학교를 지나 한참 더 먼 곳에 있는 어촌 마을 아낙네들은 남편들이 밤새 잡아 온 물고기를 바구니에 담아 머리에 이고 바쁜 걸음으로 시장으로 팔러 가곤 했다. 긴 주둥이를 바구니 밖으로 내민 신선한 동갈치, 은빛 꼬리가 아침 햇빛에 유난히 선명한 갈치를 보면서, 저걸 숯불에 구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싶었지만, 여태껏 먹어보지 못했다.
태국에도 1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장터가 있다. 이를 “딸랏낫”이라 부른다. 여러 백화점과 곳곳에 대형 슈퍼체인이 있는 시내에서도 1주일 동안 장소를 바꿔 가며 이 장이 열리고 있다.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난 읍이나 면 단위로 가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의 장터도 만날 수 있다.
추석이나 구정을 앞둔 오일장터는 평소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성한 물건들로 사람들을 불렀다. 지난 금요일, 사역지를 다녀오는 길에 중국인 마을마다 유난히 많은 홍등이 걸려있고, 가게마다 붉은색 중국옷들로 물든 것을 보고 다음 주가 구정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마을은 매주 금요일마다 ‘넝욱’호수를 빙 둘러서 시장이 열린다.
그날은 평소보다 물건도 많고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별히 구정을 쇠는 ‘리수족’들이 마을별로 대거 대목시장을 보러 나왔다. 이들은 어디를 가나 전통 복장을 하고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방학도 아니고 쉬는 날도 아닌데, 아이들은 아예 이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시장 구경을 나왔다. 혼자 온 사람보다 아이 한둘씩 데리고 나온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사람 냄새가 향기로운 풍경이다.
엄마 아빠들은 돼지고기 몇 근에 각종 양념과 반찬 재료를 사 대나무바구니를 채워간다. 모처럼 시장에 따라 나온 아이를 데리고 신발가게로 가서 신발을 고르기도 한다. 신고 있는 신발이나 새로 사려는 신발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도 아이의 얼굴은 우주를 나는 듯한 기쁨으로 가득하다. 모처럼 이웃 마을 친구들을 만나 나누는 정담이 장터에 나온 즐거움을 더하게 한다. 군고구마 한 무더기 두고 팔면서도 더없이 행복해하시는 할아버지의 낙천이 부럽다.
어찌 장터에서 먹거리가 빠질 수 있으랴. 늘 먹는 집밥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시장터의 밥상은 잔치다. 똑같은 옥수수 국수를 파는 집이 많지만 한 포장마차 앞에는 유독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나도 그 맛이 궁금해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잘게 썬 숙성된 갓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두 접시를 넣고 비벼 먹었다. 이 집만의 차별점이라면, 이 집은 국수를 손님에게 내기 바로 직전에 닭 뼈를 삶은 물에 데쳐 준다는 것이다.
큰아이 손을 잡고 젖먹이는 등에 업은 젊은 엄마들이 값싼 화장품 가게에 들러 종업원의 설명을 듣고 손등에 발라보고 냄새도 맡아보다가, 값을 물어본 뒤 슬그머니 나온다. 아마도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한 녀석이 닭 한 마리를 껴안고 만족스럽게 걸어가길래, “그 닭을 기를 거야, 아니면 설날 잡아먹을 거야?” 하고 물었다. 그 소년은 함박웃음을 띄며 “설날 잡아먹으려고 250밧을 주고 샀어요!” 한다.
이 장터에도 약장수 부부가 있었다. 원숭이나 차력사의 쇼는 없었지만, 마이크를 잡고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 방법은 비슷했다. “자, 자,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돈 내지 않아도 됩니다. 허리나 관절 아프신 분들은 여기 달여놓은 약물 한 컵씩 드셔 보세요! 신장이나 다른 기관에 전혀 해가 없습니다!” 사실 산비탈을 가꾸며 살아가는 이들 중 대부분은 허리와 관절통을 달고 산다
다양한 김치를 파는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옛날 엄마가 봄철 연한 갓으로 담가 주셨던 것과 비슷해 보이는 김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맛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젓가락을 내민다. 고향에서 먹던 맛에 살짝 마라향이 섞인 듯한 맛이 특이했다. 한 봉지를 사서 집에 왔다. 아침에 먹고 점심때도 생각나서 아내에게 물었더니 다 먹어서 없다고 한다. 이번 설에는 잃어버린 고향 오일장의 추억과 향수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고 싶다.











중학교까지 다녔던 고향마을에는 닷새마다 열리는 오일장이 있었다. 없는 것 빼고는 다 판다는 만물시장부터 어물시장과 옷가게,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파는 노점, 살아있는 닭, 오리, 토끼, 거위, 돼지를 파는 가축시장,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까지 그 규모도 컸다. 시장 한쪽 구석에는 농기구를 수리하고 만드는 철공소도 있었고, 고춧가루를 빻고 참기름을 짜는 곳, 꽉 찬 손님들로 왁자지껄한 국밥집, 남녀노소 불문하고 발길을 멈추게 하는 국화빵, 붕어빵, 술빵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었다
장날이 되면 빠지지 않고 열리는 또 다른 볼거리도 있었다. 바로 만병통치약을 판다는 약장수들의 쇼다. 원숭이 한 마리 묶어 두고 맥주병을 깨 멍석 위에 깔아놓은 뒤 차력사가 그 위에 누웠다. 그리고 배 위에 돌을 올려놓고는 해머로 치는 장면은 차마 볼 수 없어 얼굴을 가렸던 순간, 장고를 신명 나게 치던 광대들이 짧은 맛보기 묘기를 보여주었다. 이어서 긴 약 선전과 판매하는 지루한 시간을 쪼그려 앉아 언제쯤 다시 원숭이가 재주를 부리고 차력사가 등장할까 기대하다 지쳐 돌아오곤 했던 그 장터는 내 삶에서 한편의 동화다.
4km 떨어진 초등학교에 가는 길, 초등학교를 지나 한참 더 먼 곳에 있는 어촌 마을 아낙네들은 남편들이 밤새 잡아 온 물고기를 바구니에 담아 머리에 이고 바쁜 걸음으로 시장으로 팔러 가곤 했다. 긴 주둥이를 바구니 밖으로 내민 신선한 동갈치, 은빛 꼬리가 아침 햇빛에 유난히 선명한 갈치를 보면서, 저걸 숯불에 구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싶었지만, 여태껏 먹어보지 못했다.
태국에도 1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장터가 있다. 이를 “딸랏낫”이라 부른다. 여러 백화점과 곳곳에 대형 슈퍼체인이 있는 시내에서도 1주일 동안 장소를 바꿔 가며 이 장이 열리고 있다.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난 읍이나 면 단위로 가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의 장터도 만날 수 있다.
추석이나 구정을 앞둔 오일장터는 평소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성한 물건들로 사람들을 불렀다. 지난 금요일, 사역지를 다녀오는 길에 중국인 마을마다 유난히 많은 홍등이 걸려있고, 가게마다 붉은색 중국옷들로 물든 것을 보고 다음 주가 구정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마을은 매주 금요일마다 ‘넝욱’호수를 빙 둘러서 시장이 열린다.
그날은 평소보다 물건도 많고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별히 구정을 쇠는 ‘리수족’들이 마을별로 대거 대목시장을 보러 나왔다. 이들은 어디를 가나 전통 복장을 하고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방학도 아니고 쉬는 날도 아닌데, 아이들은 아예 이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시장 구경을 나왔다. 혼자 온 사람보다 아이 한둘씩 데리고 나온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사람 냄새가 향기로운 풍경이다.
엄마 아빠들은 돼지고기 몇 근에 각종 양념과 반찬 재료를 사 대나무바구니를 채워간다. 모처럼 시장에 따라 나온 아이를 데리고 신발가게로 가서 신발을 고르기도 한다. 신고 있는 신발이나 새로 사려는 신발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도 아이의 얼굴은 우주를 나는 듯한 기쁨으로 가득하다. 모처럼 이웃 마을 친구들을 만나 나누는 정담이 장터에 나온 즐거움을 더하게 한다. 군고구마 한 무더기 두고 팔면서도 더없이 행복해하시는 할아버지의 낙천이 부럽다.
어찌 장터에서 먹거리가 빠질 수 있으랴. 늘 먹는 집밥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시장터의 밥상은 잔치다. 똑같은 옥수수 국수를 파는 집이 많지만 한 포장마차 앞에는 유독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나도 그 맛이 궁금해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잘게 썬 숙성된 갓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두 접시를 넣고 비벼 먹었다. 이 집만의 차별점이라면, 이 집은 국수를 손님에게 내기 바로 직전에 닭 뼈를 삶은 물에 데쳐 준다는 것이다.
큰아이 손을 잡고 젖먹이는 등에 업은 젊은 엄마들이 값싼 화장품 가게에 들러 종업원의 설명을 듣고 손등에 발라보고 냄새도 맡아보다가, 값을 물어본 뒤 슬그머니 나온다. 아마도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한 녀석이 닭 한 마리를 껴안고 만족스럽게 걸어가길래, “그 닭을 기를 거야, 아니면 설날 잡아먹을 거야?” 하고 물었다. 그 소년은 함박웃음을 띄며 “설날 잡아먹으려고 250밧을 주고 샀어요!” 한다.
이 장터에도 약장수 부부가 있었다. 원숭이나 차력사의 쇼는 없었지만, 마이크를 잡고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 방법은 비슷했다. “자, 자,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돈 내지 않아도 됩니다. 허리나 관절 아프신 분들은 여기 달여놓은 약물 한 컵씩 드셔 보세요! 신장이나 다른 기관에 전혀 해가 없습니다!” 사실 산비탈을 가꾸며 살아가는 이들 중 대부분은 허리와 관절통을 달고 산다
다양한 김치를 파는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옛날 엄마가 봄철 연한 갓으로 담가 주셨던 것과 비슷해 보이는 김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맛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젓가락을 내민다. 고향에서 먹던 맛에 살짝 마라향이 섞인 듯한 맛이 특이했다. 한 봉지를 사서 집에 왔다. 아침에 먹고 점심때도 생각나서 아내에게 물었더니 다 먹어서 없다고 한다. 이번 설에는 잃어버린 고향 오일장의 추억과 향수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