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원시부터 최첨단까지

202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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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담당 교역자를 만나기 위해 태국 메싸이 국경에 왔다. 현재 미얀마 동북부 지역은 내전으로 인해 외국인의 육로 출입이 10개월째 금지되어 있으며 내전은 샨주 북부의 라시오, 만달레, 떵지, 치앙뚱까지 확산되고 있다.

사실, 미얀마의 카렌주, 샨주, 와주, 친주, 카친주의 사람들은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 속에서 한 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은 외부에서 전쟁을 뉴스로 접하는 이들과 크게 다르다. 이들에게 전쟁은 먹고 살기 위한 세상살이 아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며,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되어있다.

지키려는 자와 침범한 자의 갈등이 공존하는 곳이 태국 메싸이와 미얀마 타칠렉의 국경이고 태국 메섯과 미얀마 미야와디의 국경이다. 이러한 국경은 급변하는 세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세상의 모든 종교, 정치, 수많은 나라의 첩보원들, 이들 중에는 우리의 남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돈이 되는 모든 것은 다 집약되어 있다. 최첨단의 삶부터 원시적인 삶까지 모든 것이 공존한다. 

미얀마 정부군과 민족 무장 단체들은 전투에 필요한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징집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군이 통제하는 지역에서는 18세부터 32세 사이의 남성들에게 징집 명령을 내렸다. 소수민족 자치구에서는 가족이 2명이면 1명, 3명이면 2명, 4명이면 3명이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강제 징집된다. 이 때문에 친척 중 한쪽은 정부군, 다른 쪽은 민족부대에 소속되어 전장에서 서로 총을 겨누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정부군 징집 통지서를 받자 마을별로 돈을 모아 지역 군부대에 뇌물을 주고 징집명단에서 이름을 지운 후 마을을 떠나 태국으로 도망치려는 자들과 민족부대의 강제징집을 피해 태국으로 도망치려는 사람들이 미얀마 국경 타칠렉으로 몰려들고 있다.

게다가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도박장과 콜센터에 몰려든 태국 젊은이들로 인해 타칠렉의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지붕만 있는 집일지라도 빈방이 없을 정도이며, 몰려든 차들로 인해 1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넘게 걸려야 한다.

태국 메싸이 국경 도로 양쪽에 그동안 없었던 오토바이 정차장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40년 넘게 장사한 친구에게 이 오토바이에 관해 물었다. 그는, 미얀마 내전이 한창인 가운데도 타칠렉 국경을 넘어가 콜센터에서 일하는 전화 상담원과 인터넷 도박장 직원들, 그곳을 드나들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태국 젊은이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라고 했다.

태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월 12,000바트 정도의 임금을 받는데, 도박장의 딜러나 콜센터에서 일하면 월 40,000에서 50,000바트를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하루 2교대로 근무한다. 아침에 국경이 열리면 오전 근무자들이 국경을 넘어가 오후 6시까지 일하고 돌아오고 그 뒤를 이어 야간 근무자들이 국경을 넘어간다고 했다. 이렇게 번 돈을 메싸이 뒷골목에서 대마를 피우며 탕진한다고 한다.

이 친구는 10년 전부터 가게와 건물을 팔려고 내놓았으나 아직 팔리지 않고 있다. 바로 국경 다리 옆이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모두 이 땅끝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오는 길목 좋은 곳인데도 팔리지 않고 있다. 왜 팔려고 하느냐고 묻자, 이제 육십이 넘었는데 언제까지 가게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독신이다. 조카들을 자기 자녀들처럼 돌보며 산다. 젊은 조카들이 가게를 이어받기를 바라지만, 아무도 이 가게를 맡으려 하지 않고, 한국에 불법 체류하며 돈을 벌어 보내온 엄마의 돈에 의지해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높은 임금이 보장된 한국으로 떠나기를 희망하는 태국인들의 추세가 여전하다.

태국의 거의 모든 육체노동 현장은 태국인이 받는 것보다 작은 임금을 받고도 감사하며 일하는 미얀마 난민들이 대신하고 있다. 태국인들은 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해 손쉽게 돈을 벌고 있다. 누군가 못해서 그 반대급부를 받고 있는데, 그것을 자기 능력으로 착각하고 거들먹거리는 자들을 대하는 것은 불편하다.

내전으로 많은 난민이 태국으로 넘어오자, 이제 태국의 건설 현장이나 공장, 허드렛일을 하는 곳에서도 미얀마 사람을 선별해 고용하고 있다. 태국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우리 한국인들도 이러한 난민 노동력이 없으면 사업을 유지하기 힘든 구조다. 

불법 난민을 고용했다고 태국 이민국과 경찰들이 수시로 들이닥쳐 돈을 뜯어 간다. 이런 가운데 여행객과 한 달 살기는 현지 교민들의 사업과는 무관하게 점점 확산해 가고, 우리 언론의 현주소는 국경 재래시장에서 채소나 값싼 물건을 싸주는 포장지에 담겨 있었다. 

호텔 로비에서 동역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미얀마 소수 부족의 전통 가방을 메고 성경책을 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호텔 세미나실에서 나왔다. 말레이시아의 한 화교 교회에서 일본 선교사와 연합해 라후족, 아카족, 친족 성도들 25명을 이 호텔로 불러 단기 훈련 중이라고 했다.

미얀마 랭군에서 목회하던 한 미얀마 목사는 아예 이 호텔 세미나실을 빌려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미얀마 정부군과 소수민족 부대 사이에 끼인 한 마을은 예배당을 중심으로 하나 되어 마을을 지키며 열심히 살려보려고 하는데, 주변 환경이 그들의 바람대로 따라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난 약 백 년의 미얀마 역사를 작은 국경 도시가 흑백 사진처럼 담고 있는 듯하다. 거룩한 꿈을 거룩한 방법으로 이루려는 사람은 고독하다. 거룩한 꿈을 앞세우고 세상과 결탁한 방법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종교와 정치의 리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긴 내전은 사회 구조를 변화시켰다. 민족 자치를 주장하며 무장하고 정부군과 싸우는 단체일지라도 지도층의 일부는 재산과 가족을 해외로 빼돌렸다. 일부는 정부군과 협력하여 자기 유익을 챙기고 있으며 보석 광산과 금광 개발권을 보장받아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다. 미얀마의 정치, 경제, 종교적 복잡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3일째 비가 내리고 있어 햇빛을 볼 수 없다. 감기와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시기다. 민족부대의 징집을 피해온 우리 아이들에게 비옷과 모기장이 필요하다고 해, 이를 해결해 주는 방법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미얀마 내전의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요인은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인접한 태국과 그 너머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 사회의 적극적인 개입과 인도적 지원이 절실하며, 지역 사회는 이 상황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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