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의 신전, 앙코르유적 ‘파놈룽’
태국내에 있는 크메르 유적지는 수코타이 - 롭부리 - 피마이 - 부리람 - 시사켓을 들 수 있는데 이 곳들이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으로 이어지는 길로 옛 크메르 제국의 영화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이런 연유로 태국의 아유타야 왕조와 크메르간에 격전이 일어 났던 곳이기도 한데 여기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부리람’에 있는 ‘파놈룽’유적에 대해 알아본다.
파놈룽은 태국에 있는 앙코르유적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크메르유적으로 이싼(Isan)지방을 대표한다.
‘파놈룽’이 있는 이싼 지방은 태국과 라오스,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문화가 모두 녹아 있는 독특한 지역으로 한때 앙코르 와트를 축조할 만큼 강성했던 크메르 제국의 영토 였는데 500년 이상 이어졌던 크메르 왕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크메르 제국이 쇠퇴한 후 이싼은 태국에 속해 있었지만 자치권이 부여돼 있어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지화하자 태국이 이싼을 자신들의 세력권에 넣었고 결국 라오스와의 국경이 만들어 지게 됐다.
그리고 베트남의 호찌민(Ho Chi Minh)이 사회주의의 이식을 시도한 곳으로 태국 내에서 가장 급진적인 정치색을 띠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싼은 라오스와 가까운 곳에서는 라오스어가 통용되고 캄보디아와의 접경지대에서는 크메르어가 사용될 정도로 다양한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이곳 주민들은 다른 지방과 비교해 덜 보수적이고 성격이 더 우호적이며 태국에서 소득 수준은 낮지만 행복지수는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파놈’이란 크메르어로 언덕이라는 뜻인데 따라서 파놈룽은 ‘언덕위의 신전’으로 해석된다.
본당까지는 400여m의 길이 포장돼 있는데, 좌우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석상들이 호위하듯 서 있으며 사원은 제단 역할을 하는 수십 개의 계단 위에 우뚝하게 솟아 있다.
파놈룽 유적에 들어서면 좌측으로 왕과 귀족들의 대기실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나가’상이 있다. 이 뱀처럼 생긴 신은 ‘시바’와 싸워 진 뒤 신전을 지키는 신세가 됐다고 하는데 신전 밖의 나가는 험악하게 생겼고 신전 안의 나가는 귀엽고 해학스럽게 생긴 것이 특징이며 신전 안에는 시바와 나가가 싸우는 조각도 있다.
파놈룽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있다. 먼저 정확히 동쪽을 향하고 있는 본전의 방향인데 당시 크메르 제국의 수도를 바라보도록 설계했다는 견해와 서쪽은 저승을 암시하는 나쁜 방향이기에 정반대로 건물을 구축했다는 가설이 있다.
힌두 사원은 전형적으로 새벽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른 앙코르 유적들이 정면을 다른 쪽에 두고 있는 경우도 있어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파놈룽은 산 정상에 만들어진 유적지로 동쪽을 향해서 인지 1년에 4번, 15개의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석양으로 유명하다.
이 환상적인 일몰을 볼 수 있는 날은 3월5일에서 7일, 4월2일에서 4일, 9월9일에서 11일, 10월6일에서 8일로 1년 중에 4번뿐이다.
한편, 입구를 지나가면 유명한 ‘물위에서 잠자는 나라이 신’ 조각상이 나오는데 미국 시카고 박물관에 있던 조각상을 전 국민적 운동을 통해 반환 받았다고 해서 태국국민들의 ‘자부심의 상징’이 됐다고 한다.
<2017년 6월 19일, 뉴스K 기사>
언덕위의 신전, 앙코르유적 ‘파놈룽’
태국내에 있는 크메르 유적지는 수코타이 - 롭부리 - 피마이 - 부리람 - 시사켓을 들 수 있는데 이 곳들이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으로 이어지는 길로 옛 크메르 제국의 영화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이런 연유로 태국의 아유타야 왕조와 크메르간에 격전이 일어 났던 곳이기도 한데 여기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부리람’에 있는 ‘파놈룽’유적에 대해 알아본다.
파놈룽은 태국에 있는 앙코르유적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크메르유적으로 이싼(Isan)지방을 대표한다.
‘파놈룽’이 있는 이싼 지방은 태국과 라오스,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문화가 모두 녹아 있는 독특한 지역으로 한때 앙코르 와트를 축조할 만큼 강성했던 크메르 제국의 영토 였는데 500년 이상 이어졌던 크메르 왕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크메르 제국이 쇠퇴한 후 이싼은 태국에 속해 있었지만 자치권이 부여돼 있어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지화하자 태국이 이싼을 자신들의 세력권에 넣었고 결국 라오스와의 국경이 만들어 지게 됐다.
그리고 베트남의 호찌민(Ho Chi Minh)이 사회주의의 이식을 시도한 곳으로 태국 내에서 가장 급진적인 정치색을 띠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싼은 라오스와 가까운 곳에서는 라오스어가 통용되고 캄보디아와의 접경지대에서는 크메르어가 사용될 정도로 다양한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이곳 주민들은 다른 지방과 비교해 덜 보수적이고 성격이 더 우호적이며 태국에서 소득 수준은 낮지만 행복지수는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파놈’이란 크메르어로 언덕이라는 뜻인데 따라서 파놈룽은 ‘언덕위의 신전’으로 해석된다.
본당까지는 400여m의 길이 포장돼 있는데, 좌우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석상들이 호위하듯 서 있으며 사원은 제단 역할을 하는 수십 개의 계단 위에 우뚝하게 솟아 있다.
파놈룽 유적에 들어서면 좌측으로 왕과 귀족들의 대기실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나가’상이 있다. 이 뱀처럼 생긴 신은 ‘시바’와 싸워 진 뒤 신전을 지키는 신세가 됐다고 하는데 신전 밖의 나가는 험악하게 생겼고 신전 안의 나가는 귀엽고 해학스럽게 생긴 것이 특징이며 신전 안에는 시바와 나가가 싸우는 조각도 있다.
파놈룽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있다. 먼저 정확히 동쪽을 향하고 있는 본전의 방향인데 당시 크메르 제국의 수도를 바라보도록 설계했다는 견해와 서쪽은 저승을 암시하는 나쁜 방향이기에 정반대로 건물을 구축했다는 가설이 있다.
힌두 사원은 전형적으로 새벽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른 앙코르 유적들이 정면을 다른 쪽에 두고 있는 경우도 있어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파놈룽은 산 정상에 만들어진 유적지로 동쪽을 향해서 인지 1년에 4번, 15개의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석양으로 유명하다.
이 환상적인 일몰을 볼 수 있는 날은 3월5일에서 7일, 4월2일에서 4일, 9월9일에서 11일, 10월6일에서 8일로 1년 중에 4번뿐이다.
한편, 입구를 지나가면 유명한 ‘물위에서 잠자는 나라이 신’ 조각상이 나오는데 미국 시카고 박물관에 있던 조각상을 전 국민적 운동을 통해 반환 받았다고 해서 태국국민들의 ‘자부심의 상징’이 됐다고 한다.
<2017년 6월 19일, 뉴스K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