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속에서 희망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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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는 때로 인간 문명의 한계를 일깨우는 강력한 신호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문명의 파편들을, 자연은 때때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려 한다. 인류에게 자연과의 조화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과정이다.

문명이 자연의 힘을 제어하려는 것은 인간의 자만이다. 자연이 그 자신의 길을 가도록 기다리며 우리는 자연이 남긴 파편을 치우며, 그 교훈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자연과 문명의 충돌 현장에서 경찰과 군인들은 먼저 고립된 사람들을 구조한다. 헬기와 구급차가 종일 분주히 오가고 민간단체는 물과 음식을 준비해 곳곳에서 나눠 준다. 

태국 최북단 국경도시 메싸이 시내는 온통 진흙탕이다. 진흙에 차가 묻히고 오토바이가 나뒹군다. 미얀마에서 건너와 어렵게 마련한 삶의 터전도, 고향 친구들에게 태국살이 성공의 상징이던 포장마차도 그 속에 잠겼다. 

폐허가 된 이민국부터 중장비가 동원되었다. 국경 다리 위의 진흙을 밀어 쏨루악 강물 위에 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운 미얀마는 불도저를 동원했고, 미얀마에 대해 우월감이 있는 태국은 트랙터를 동원했다.

미얀마는 장비의 능력만큼 신속하게 자기 구역을 정리하고 부서진 철문도 치운다. 태국 경찰서와 세관 앞마당에 작은 언덕이 돼버린 진흙을 퍼내는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굴착기 앞에는 이를 지원해준 정치인의 사진 광고판이 팔랑거린다. 

길 양옆에는 쓰레기가 쌓여 썩어가고, 시민들은 집안에 들어찬 진흙탕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는데 높은 관리님은 경호원을 대동하고 주변을 차단한 채 브리핑만 받고 있다. 그 권력으로 사용 가능한 모든 중장비를 동원해 시민들이 겪는 불편을 먼저 해결하고,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지도자가 그립다. 

국경이 열리자 홍수에 발이 묶였던 미얀마 사람들이 발길을 재촉한다. 편리함보다는 편안한 가족의 품이 그리운 것이다. 쏨루악 강물이 서서히 물러가면서 남겨진 문명의 파편과 자연의 잔해 속에서 사람들은 절망 대신 생존을 선택했다. 

쏨루악 강물이 자연과 문명을 가르듯이 흐르고, 진흙은 자연의 뒤틀림처럼 쌓여 있지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주민들은 가게 안의 진흙을 퍼내며 물건들을 다시 정리한다. 

잘 씻어 말리면 다시 팔 수 있을 만한 것은 정성스레 모아두고, 아까운 듯 한참을 망설이다가도 도무지 재생 불가능하다 싶은 것은 버린다. 그렇게 버려진 물건을 양손 가득 주워가는 사람도 있다. 가게의 물건뿐 아니라, 방안의 침대, 이부자리, 옷가지 등 모든 것이 엉망이다.

한 호텔 1층 식당을 가득 채운 진흙을 치우던 주인은, 자기 할아버지가 말했다며 이런 재난은 8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황토물은 80대 부부의 소중한 삶의 터전도 뒤덮었다. 할머니가 1층 가게 안에 가득 찬 진흙을 문밖으로 밀어내면, 할아버지는 그 진흙이 다시 가게 안으로 밀려들지 않도록 낮은 쪽으로 보내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한 아이는 홍수 속에서도 소중한 장난감 자동차를 챙겼고, 이틀간 고립돼 있던 강아지도 구조됐다. 커피 가게 주인은 진흙으로 덮인 커피잔과 기계를 정리하며,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을 미련 없이 내버린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내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친 기색 없이 자신의 터전을 보수한다. 

오랜 친구가 궁금해, 깊은 진흙밭을 지나 그의 가게로 갔다. 어둠 속에서 가게 안에 쌓인 진흙을 밀어내던 친구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그를 도울 수 없다는 사실에 미안했지만, 그의 의연한 태도와 빛나는 눈빛은 희망을 전하고 있었다.

쏨루악 강의 범람은 단순한 자연의 심술이 아니다. 미얀마 샨주의 오랜 역사를 태국 사람과 세계인들에게 전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태국과 세계 뉴스는 오직 홍수에만 주목하고 있다.

중국이 메콩강 댐 수문을 연다고 통보했다. 이 물이 약 10시간쯤 후에는 골든트라이앵글에 도달할 것이다. 메콩강 수위가 오르면 쏨루악 강물이 더디 빠질 것이다. 그 물이 빠질 때까지 우리 유아원에 쌓인 진흙더미를 치우기 위한 시간도 길어지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복구를 기다리며 희망을 품는다. 

지난 8월 한국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정성껏 만들어주신 놀이터, 애지중지 모아 보내주신 장난감과 책들, 예쁜 색으로 단장한 벽, 스마트 TV, 냉장고, 이불, 매트리스, 온전히 남아있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 뒷길로 유아원 진입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물살이 거세서 차를 돌려야 했다.

자연과 문명 사이의 긴장은 때때로 충돌로 표출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자연이 베푼 은혜와 회복력을 발견한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와 문명의 복원력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자연과의 조화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자연과 문명의 상호작용은 우리에게 새로운 성찰을 요구한다. 그 성찰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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