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산악지대 곳곳에 흩어져 사는 소수민족들은 어쩌면 축제를 위해 사는 민족이 아닐까 싶다. 10월 중순이 지나 산비탈에 심었던 벼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면, 태국 북부의 소수민족 마을에서는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된다. 추수감사 축제를 시작으로 태국의 ‘러이끄라통’(Loy Krathong) 축제를 함께 즐기고 나면 곧바로 성탄절 축제로 이어진다.
태국에서는 12월 25일이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교회별로 12월 중 하루나 이틀을 지정해 성탄 축하 예배를 드린다. 축제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려고 여러 마을이 연합해 행사를 하다 보니, 12월 내내 산마다 성탄절 캐럴이 메아리친다.
기독교인들의 성탄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12월 말부터는 새해 축제가 시작된다. 새해 축제도 보통 일주일 정도 이어지는데, 날짜와 시기는 부족이나 마을마다 다르다. 신정 설을 쇠는 마을도 있고, 구정 설을 쇠는 마을도 있어 보통 정월 대보름까지 축제가 계속되기도 한다. 대개 축제를 시작하기 1주일 전부터 준비에 들어가므로, 소수민족 마을은 1년 중 약 4개월간 축제 분위기에서 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부족이 축제를 즐기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몽족은 보통 12월 말에서 1월 초 사이에 3박 4일가량 새해 축제를 연다. 이 기간에 몽족 남자들은 주로 팽이치기를 하고, 여자들은 오자미 던지기를 즐긴다. 몽족에는 구전되어 온 전통 노래와 악기가 있다. 특히 ‘깽’이라 불리는 악기를 연주하며 추는 춤은 브레이크댄스를 연상케 한다. 최근에는 ‘미스 몽(Miss Hmong) 선발대회’가 축제의 하이라이트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이유인지, 삶의 여유가 생겨서인지 전통 복장이 더욱 화려하고 과감해지고 있다.
‘라후셀레족’은 태국 내에 약 3만 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종족이지만, 다른 종족에 비해 마을 단위가 크고 전통문화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새해가 되면 이들은 마을 한곳에 50cm 정도 흙을 돋우고 그 위에 돌 세 개를 놓아 제단을 만든다. 제단을 중심으로 지름 약 50m 넓이로 마당을 만들고, 그 주변을 대나무나 나무로 담장을 쌓아 신성한 경계선을 두른다.
여자들은 색동저고리에 댕기를 단 바지를 입고, 세 줄 기타 리듬에 맞춰 2명 이상이 팔짱을 겹쳐 끼고 제단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다양한 스텝을 바꾸어 밟는다. 꾹 다문 입술에는 기쁨과 안도의 미소가 어려있지만, 저들의 스텝은 흐트러짐 없이 단호하다.
남자들은 대나무 피리의 일종인 ‘노꾸마’의 리듬에 맞춰 적당히 취기가 오른 듯한 동작으로 여자들 바깥쪽에서 원을 그리며 춤사위를 이어간다. 보통 3일에서 일주일 정도 이어지는 이 축제에서는,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공동체의 단결이 엿보인다.
리수족의 전통 복식은 오색 겉옷에 화려한 수술 장식이 달린 모자가 특징이다. 리수족에는 ‘쓰브’라는 세 줄 기타와, 박에 갈대를 짧게 이어 붙여 중음을 내는 ‘빠리플루’, 갈대를 길게 붙여 저음을 내는 ‘플루렐레’, 그리고 피리의 일종인 ‘쯜르’가 있다.
요즘은 전통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 점차 줄어, 최근 축제에서는 주로 ‘쓰브’와 ‘빠리플루’ 리듬에 맞춰 남녀가 손을 잡고 큰 원을 그리며 다양한 스텝을 바꿔가며 군무를 춘다. 이들의 춤은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아 우아함마저 느껴진다. 맞잡은 손을 흔들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 발을 땅에 스치듯 박차며 스텝을 밟는 소리, 전통 복장에 달린 은구슬이 부딪치는 소리는 고요한 밀림의 향기와 어우러져 몽환적인 평안을 선사한다.
라후족의 전통 춤은 다른 부족의 춤에 비해 빠른 리듬을 따라 경쾌하고 발랄하다. 새해 기간 낮에는 남자들이 ‘코씨’라 불리는 팽이치기를 하고 여자들은 커다란 나무 열매로 ‘비석 치기(까나)’와 ‘오자미 던지기(캐시)’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밤이 되면 모두 한곳에 모여 함께 춤을 춘다. 라후족의 악기는 갈대와 박을 연결해 만든 ‘노’, 몸통이 조금 긴 ‘북(째꾸)’, 징 역할을 하는 ‘꽹과리(부르꾸)’, 작은 심벌즈인 ‘쐐’ 등이 있다.
라후족의 춤사위에는 세 가지 다른 리듬과 동작이 있다. 남자 어른들은 제단 가장 가까운 곳에서 ‘노’를 불며 무표정한 얼굴에 한(恨)을 뿜어내는 듯 몸을 비틀어 가면서도 차분하게 리듬을 타며 춤을 춘다. 전통 복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자 어른들은 손을 맞잡은 채 남자들이 뿜어내는 한을 바라보며, 그들을 감싸듯이 우아하고 편안한 춤사위를 이어간다. 아직 삶의 깊은 의미를 모르는 청소년과 아이들은 가장 바깥쪽에서 원을 만들어 북과 징, 심벌즈를 치며 흥겹게 춤을 춘다.
과거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마이크나 확성기도 없을 때, 이들의 춤은 하늘의 별들도 숙연하게 할 만큼 신성했다. 전통 복장은 모닥불이나 반딧불에서 더욱 빛났고, ‘쓰브’와 ‘노’ ‘노꾸마’ ‘빠리플루’와 북, 징 소리는 자연과 어우러져 맑고 투명한 공명을 이루며 두렵도록 아픈 삶을 청아하고 시린 메아리로 바꾸어 놓았다.
문명의 편리함이 몰고 온 각종 도구로 인해, 한때 자연의 편안함을 누리며 살아가던 소수민족 사회가 점차 혼탁해지고 있다. 자연으로만 만들어 낸 전통 리듬은 문명의 이기에 흐트러지고 고고한 스텝은 유혹에 비틀거린다. 거친 손안에 서로를 꼭 잡고 있던 공동체 정신에도 부드럽고 향기 나는 이기가 스며들었다.
관광객들은 그저 누릴 뿐, 뒤처리에 대한 책임감은 없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긴 축제가 이어졌어도 남은 것은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은 짧은 축제 기간이지만 축제가 끝난 자리에는 온통 문명의 이기들뿐이다. 깊은 밀림이 문명의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소수민족의 축제는 단순히 잠시 즐기고 버려둬도 되는 쾌락의 대상이 아니다. 이들 공동체와 그들이 의지해 살아가는 자연, 그리고 문명이 함께 호흡하며 지키고 보존해야 할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다. 진정한 축제의 힘은 화려함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지고 공감하는 데서 나온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축제는 사람과 자연,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데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별조차 숙연하게 만들던 소수민족 축제의 울림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란다.














동남아시아 산악지대 곳곳에 흩어져 사는 소수민족들은 어쩌면 축제를 위해 사는 민족이 아닐까 싶다. 10월 중순이 지나 산비탈에 심었던 벼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면, 태국 북부의 소수민족 마을에서는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된다. 추수감사 축제를 시작으로 태국의 ‘러이끄라통’(Loy Krathong) 축제를 함께 즐기고 나면 곧바로 성탄절 축제로 이어진다.
태국에서는 12월 25일이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교회별로 12월 중 하루나 이틀을 지정해 성탄 축하 예배를 드린다. 축제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려고 여러 마을이 연합해 행사를 하다 보니, 12월 내내 산마다 성탄절 캐럴이 메아리친다.
기독교인들의 성탄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12월 말부터는 새해 축제가 시작된다. 새해 축제도 보통 일주일 정도 이어지는데, 날짜와 시기는 부족이나 마을마다 다르다. 신정 설을 쇠는 마을도 있고, 구정 설을 쇠는 마을도 있어 보통 정월 대보름까지 축제가 계속되기도 한다. 대개 축제를 시작하기 1주일 전부터 준비에 들어가므로, 소수민족 마을은 1년 중 약 4개월간 축제 분위기에서 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부족이 축제를 즐기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몽족은 보통 12월 말에서 1월 초 사이에 3박 4일가량 새해 축제를 연다. 이 기간에 몽족 남자들은 주로 팽이치기를 하고, 여자들은 오자미 던지기를 즐긴다. 몽족에는 구전되어 온 전통 노래와 악기가 있다. 특히 ‘깽’이라 불리는 악기를 연주하며 추는 춤은 브레이크댄스를 연상케 한다. 최근에는 ‘미스 몽(Miss Hmong) 선발대회’가 축제의 하이라이트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이유인지, 삶의 여유가 생겨서인지 전통 복장이 더욱 화려하고 과감해지고 있다.
‘라후셀레족’은 태국 내에 약 3만 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종족이지만, 다른 종족에 비해 마을 단위가 크고 전통문화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새해가 되면 이들은 마을 한곳에 50cm 정도 흙을 돋우고 그 위에 돌 세 개를 놓아 제단을 만든다. 제단을 중심으로 지름 약 50m 넓이로 마당을 만들고, 그 주변을 대나무나 나무로 담장을 쌓아 신성한 경계선을 두른다.
여자들은 색동저고리에 댕기를 단 바지를 입고, 세 줄 기타 리듬에 맞춰 2명 이상이 팔짱을 겹쳐 끼고 제단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다양한 스텝을 바꾸어 밟는다. 꾹 다문 입술에는 기쁨과 안도의 미소가 어려있지만, 저들의 스텝은 흐트러짐 없이 단호하다.
남자들은 대나무 피리의 일종인 ‘노꾸마’의 리듬에 맞춰 적당히 취기가 오른 듯한 동작으로 여자들 바깥쪽에서 원을 그리며 춤사위를 이어간다. 보통 3일에서 일주일 정도 이어지는 이 축제에서는,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공동체의 단결이 엿보인다.
리수족의 전통 복식은 오색 겉옷에 화려한 수술 장식이 달린 모자가 특징이다. 리수족에는 ‘쓰브’라는 세 줄 기타와, 박에 갈대를 짧게 이어 붙여 중음을 내는 ‘빠리플루’, 갈대를 길게 붙여 저음을 내는 ‘플루렐레’, 그리고 피리의 일종인 ‘쯜르’가 있다.
요즘은 전통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 점차 줄어, 최근 축제에서는 주로 ‘쓰브’와 ‘빠리플루’ 리듬에 맞춰 남녀가 손을 잡고 큰 원을 그리며 다양한 스텝을 바꿔가며 군무를 춘다. 이들의 춤은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아 우아함마저 느껴진다. 맞잡은 손을 흔들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 발을 땅에 스치듯 박차며 스텝을 밟는 소리, 전통 복장에 달린 은구슬이 부딪치는 소리는 고요한 밀림의 향기와 어우러져 몽환적인 평안을 선사한다.
라후족의 전통 춤은 다른 부족의 춤에 비해 빠른 리듬을 따라 경쾌하고 발랄하다. 새해 기간 낮에는 남자들이 ‘코씨’라 불리는 팽이치기를 하고 여자들은 커다란 나무 열매로 ‘비석 치기(까나)’와 ‘오자미 던지기(캐시)’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밤이 되면 모두 한곳에 모여 함께 춤을 춘다. 라후족의 악기는 갈대와 박을 연결해 만든 ‘노’, 몸통이 조금 긴 ‘북(째꾸)’, 징 역할을 하는 ‘꽹과리(부르꾸)’, 작은 심벌즈인 ‘쐐’ 등이 있다.
라후족의 춤사위에는 세 가지 다른 리듬과 동작이 있다. 남자 어른들은 제단 가장 가까운 곳에서 ‘노’를 불며 무표정한 얼굴에 한(恨)을 뿜어내는 듯 몸을 비틀어 가면서도 차분하게 리듬을 타며 춤을 춘다. 전통 복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자 어른들은 손을 맞잡은 채 남자들이 뿜어내는 한을 바라보며, 그들을 감싸듯이 우아하고 편안한 춤사위를 이어간다. 아직 삶의 깊은 의미를 모르는 청소년과 아이들은 가장 바깥쪽에서 원을 만들어 북과 징, 심벌즈를 치며 흥겹게 춤을 춘다.
과거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마이크나 확성기도 없을 때, 이들의 춤은 하늘의 별들도 숙연하게 할 만큼 신성했다. 전통 복장은 모닥불이나 반딧불에서 더욱 빛났고, ‘쓰브’와 ‘노’ ‘노꾸마’ ‘빠리플루’와 북, 징 소리는 자연과 어우러져 맑고 투명한 공명을 이루며 두렵도록 아픈 삶을 청아하고 시린 메아리로 바꾸어 놓았다.
문명의 편리함이 몰고 온 각종 도구로 인해, 한때 자연의 편안함을 누리며 살아가던 소수민족 사회가 점차 혼탁해지고 있다. 자연으로만 만들어 낸 전통 리듬은 문명의 이기에 흐트러지고 고고한 스텝은 유혹에 비틀거린다. 거친 손안에 서로를 꼭 잡고 있던 공동체 정신에도 부드럽고 향기 나는 이기가 스며들었다.
관광객들은 그저 누릴 뿐, 뒤처리에 대한 책임감은 없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긴 축제가 이어졌어도 남은 것은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은 짧은 축제 기간이지만 축제가 끝난 자리에는 온통 문명의 이기들뿐이다. 깊은 밀림이 문명의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소수민족의 축제는 단순히 잠시 즐기고 버려둬도 되는 쾌락의 대상이 아니다. 이들 공동체와 그들이 의지해 살아가는 자연, 그리고 문명이 함께 호흡하며 지키고 보존해야 할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다. 진정한 축제의 힘은 화려함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지고 공감하는 데서 나온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축제는 사람과 자연,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데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별조차 숙연하게 만들던 소수민족 축제의 울림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