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부터 태국 북쪽 메홍선 도와 미얀마와의 국경 분쟁이 큰 이슈로 떠올랐다. 해당 지역은 해발 약 1500m에서 2200m에 이르는 높은 산들과 깊은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어, 국경 초소나 이민국이 위치한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국경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깊고 험한 밀림이 펼쳐져 있어 일부 소수민족 마을을 제외하면 사람이 거주하는 곳도 드물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선은 1894년 태국의 전신인 ‘싸이암’과 미얀마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간의 협상을 통해 결정되었다. 태국이나 미얀마 정부와는 무관하게 살아온 이곳 원주민들은 국가에 대한 소속감이나 정체성도 흐리다.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 지배할 당시에도, 그 영향력이 이 지역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인도 북부로 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 이 지역을 지나갔다.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밀린 국민당 군인들이 이곳에 들어와, 원주민 여자들과 결혼해 정착하면서부터 세간의 이목을 받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마약왕으로 불리는 ‘쿤사(Khun Sa)’다. 그는 국민당 대대장 출신인 아버지와 ‘타이야이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온 그는 1980년부터 타이야이족 독립을 위한 ‘몽타이(MTA)’군을 창설하고, 1993년에는 ‘타이야이족 독립국’을 선포했다.
1994년에서 1995년 사이 서방의 압력과 내부 분열, 미얀마 정부군의 회유로 조직이 와해 되면서 쿤사는 미얀마 정부군에 신변 보장을 조건으로 투항했다. 쿤사의 빈자리를 ‘와족 연방군(United Wa State Army -UWSA)’이 빠르게 차지했다. 2008년, 미얀마 정부는 와족 연방군의 주둔 지역을 중국과 국경을 접한 ‘빵쌍’을 중심으로 한 북부 샨주 지역만을 인정하고, 태국 국경에 있는 남부 샨족 지역에 진입한 와족군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와족연방은 약 5만 명의 중국계 소수민족을 해당 지역으로 이주시켜 소유권을 강화했다.
와족연방군은 쿤사가 사용하던 진지 외에도 태국과 미얀마 국경 높은 산악 지대에 9개의 진지를 더 구축했다. 그중 두 개의 진지가 태국 국경을 침범했고, ‘넝루앙’ ‘더이후아마(말머리산)’에 위치한 704 진지는 태국 영토 내 800m까지 침범해 있다고 한다. ‘넝루앙’은 ‘랑강(Lang Liver)’이 형성한 매우 풍부한 자연 호수이고 ‘도이후아마(Doi Hua Ma)’산은 랑강(Lang Liver)의 발원지이다. 2005년 와족연방군은 이곳을 작전 기지로 활용해 ‘타이야이족 남부 자치독립 부대(SSA)’의 본부가 있는 ‘더이따이랭’를 공격하기도 했다.
더이후아마 지역의 원주민은 ‘붉은 라후족’이 중심이다. 이들은 이 랑강을 자유롭게 건너다니며 생활해 왔다. 2024년 초부터 와족연방군이 이들에게 랑강을 건너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순찰을 강화하면서 태국군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와족연방군은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강을 활용하고자 했다고 하나, 태국은 그들이 마약 제조를 목적으로 강을 확보하려 한다고 보았다.
24년 11월 18일 태국 정부는 남부와족연방군에게 12월 18일까지 해당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남부와족연방군은 빵쌍에 있는 본부와 협상 중이라고만 하며 군대를 철수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부대 인력 교체 움직임이 관찰되었다. 이에 태국군이 해당 지역 탈환을 위한 군사작전을 준비하면서 태국과 와족연방군 사이에 전운이 일기 시작했다. 남부와족연방군과 본부가 있는 북부와족연방군 간의 거리는,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약 500Km다.
미얀마와 태국 모두, 해당 지역의 국경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태국 정부가 위성 사진을 근거로 선을 그어, “여기까지는 태국 영토이니 철수하라”하고 요구하지만, 이들의 지난 역사적 배경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태국 역시 그들에게 자국 영토에서 속히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협상의 대상이 미얀마 정부인지 와족연방군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최근 태국과 미얀마는 중국이 나서서, 친중 성향의 무장 세력인 와족연방군을 설득해 주길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 국제 사회가 인정하는 지도상으로는 해당 땅이 미얀마의 영토인데, 그 땅에서 100년 넘게 거주해온 ‘라와족’과 ‘타이야이족’은 이 땅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당시 작성한 ‘빵롱협정서(PANGLONG CONFERENCE)’를 그 증거로 제시한다. 이는 세계 최장 내전 국가 중 하나인 미얀마 정치 혼란의 이유이기도 하다.
금년 들어 태국과 와족연방간의 분쟁이 미얀마의 소수민족 중 가장 큰 영토를 보유한 ‘샨주(Shan State)’의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한 RCSS/SSA(Restoration Council of Shan State Army)와 와족연방군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타이야이족과 태국인은 언어나 문화적으로 사촌보다 가깝다. 타이야이족이 주축인 SSA는 밀림 전쟁에 노하우를 가진 자신들이 빅브라더인 태국을 대신해 와족 연방군을 몰아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배경에는 쿤사 이후 상실한 이 지역의 지배권을 되찾겠다는 의도가 있다. 태국은 ‘더이후아마’로 이어지는 전기와 물은 물론 보급품의 수송경로를 모두 차단했다.
소수민족 연합의 전투력이 분산되길 바라는 미얀마 정부는 태국과 와족연방, 샨주 독립군의 충돌을 은근히 이용하며 18세에서 50세 여성에게까지 징집령을 내렸다. 만약 자녀가 군 복무를 거부하는 경우 대신 그 집안의 부모나 연장자가 군인으로서 복무해야 한다. 최근 태국 뉴스에서는 50~60세 여성과 12~15세 소년이 군사 훈련을 받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유됐다. 유엔에 따르면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발생 이후 4년 동안 6,200여 명이 사망했고, 미얀마 국민의 6%에 해당하는 350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고 한다.
미얀마 샨주에서는 주로 노약자와 병약한 이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늘고, 많은 지역에서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 일할 인력이 부족해 농장은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모든 것을 처분하고 태국으로 이주하여 결국 태국 사회에 종속된 삶을 살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태국 국경수비대나 경찰에 의해 불법 미얀마 난민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너무 많아, 이제 그 보도도 드물지만, 죽음을 피해 태국 국경을 넘는 이 슬픈 액소더스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전 세계의 관심이 이들에 대해 점점 무뎌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다.






지난해 11월부터 태국 북쪽 메홍선 도와 미얀마와의 국경 분쟁이 큰 이슈로 떠올랐다. 해당 지역은 해발 약 1500m에서 2200m에 이르는 높은 산들과 깊은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어, 국경 초소나 이민국이 위치한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국경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깊고 험한 밀림이 펼쳐져 있어 일부 소수민족 마을을 제외하면 사람이 거주하는 곳도 드물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선은 1894년 태국의 전신인 ‘싸이암’과 미얀마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간의 협상을 통해 결정되었다. 태국이나 미얀마 정부와는 무관하게 살아온 이곳 원주민들은 국가에 대한 소속감이나 정체성도 흐리다.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 지배할 당시에도, 그 영향력이 이 지역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인도 북부로 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 이 지역을 지나갔다.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밀린 국민당 군인들이 이곳에 들어와, 원주민 여자들과 결혼해 정착하면서부터 세간의 이목을 받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마약왕으로 불리는 ‘쿤사(Khun Sa)’다. 그는 국민당 대대장 출신인 아버지와 ‘타이야이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온 그는 1980년부터 타이야이족 독립을 위한 ‘몽타이(MTA)’군을 창설하고, 1993년에는 ‘타이야이족 독립국’을 선포했다.
1994년에서 1995년 사이 서방의 압력과 내부 분열, 미얀마 정부군의 회유로 조직이 와해 되면서 쿤사는 미얀마 정부군에 신변 보장을 조건으로 투항했다. 쿤사의 빈자리를 ‘와족 연방군(United Wa State Army -UWSA)’이 빠르게 차지했다. 2008년, 미얀마 정부는 와족 연방군의 주둔 지역을 중국과 국경을 접한 ‘빵쌍’을 중심으로 한 북부 샨주 지역만을 인정하고, 태국 국경에 있는 남부 샨족 지역에 진입한 와족군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와족연방은 약 5만 명의 중국계 소수민족을 해당 지역으로 이주시켜 소유권을 강화했다.
와족연방군은 쿤사가 사용하던 진지 외에도 태국과 미얀마 국경 높은 산악 지대에 9개의 진지를 더 구축했다. 그중 두 개의 진지가 태국 국경을 침범했고, ‘넝루앙’ ‘더이후아마(말머리산)’에 위치한 704 진지는 태국 영토 내 800m까지 침범해 있다고 한다. ‘넝루앙’은 ‘랑강(Lang Liver)’이 형성한 매우 풍부한 자연 호수이고 ‘도이후아마(Doi Hua Ma)’산은 랑강(Lang Liver)의 발원지이다. 2005년 와족연방군은 이곳을 작전 기지로 활용해 ‘타이야이족 남부 자치독립 부대(SSA)’의 본부가 있는 ‘더이따이랭’를 공격하기도 했다.
더이후아마 지역의 원주민은 ‘붉은 라후족’이 중심이다. 이들은 이 랑강을 자유롭게 건너다니며 생활해 왔다. 2024년 초부터 와족연방군이 이들에게 랑강을 건너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순찰을 강화하면서 태국군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와족연방군은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강을 활용하고자 했다고 하나, 태국은 그들이 마약 제조를 목적으로 강을 확보하려 한다고 보았다.
24년 11월 18일 태국 정부는 남부와족연방군에게 12월 18일까지 해당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남부와족연방군은 빵쌍에 있는 본부와 협상 중이라고만 하며 군대를 철수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부대 인력 교체 움직임이 관찰되었다. 이에 태국군이 해당 지역 탈환을 위한 군사작전을 준비하면서 태국과 와족연방군 사이에 전운이 일기 시작했다. 남부와족연방군과 본부가 있는 북부와족연방군 간의 거리는,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약 500Km다.
미얀마와 태국 모두, 해당 지역의 국경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태국 정부가 위성 사진을 근거로 선을 그어, “여기까지는 태국 영토이니 철수하라”하고 요구하지만, 이들의 지난 역사적 배경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태국 역시 그들에게 자국 영토에서 속히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협상의 대상이 미얀마 정부인지 와족연방군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최근 태국과 미얀마는 중국이 나서서, 친중 성향의 무장 세력인 와족연방군을 설득해 주길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 국제 사회가 인정하는 지도상으로는 해당 땅이 미얀마의 영토인데, 그 땅에서 100년 넘게 거주해온 ‘라와족’과 ‘타이야이족’은 이 땅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당시 작성한 ‘빵롱협정서(PANGLONG CONFERENCE)’를 그 증거로 제시한다. 이는 세계 최장 내전 국가 중 하나인 미얀마 정치 혼란의 이유이기도 하다.
금년 들어 태국과 와족연방간의 분쟁이 미얀마의 소수민족 중 가장 큰 영토를 보유한 ‘샨주(Shan State)’의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한 RCSS/SSA(Restoration Council of Shan State Army)와 와족연방군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타이야이족과 태국인은 언어나 문화적으로 사촌보다 가깝다. 타이야이족이 주축인 SSA는 밀림 전쟁에 노하우를 가진 자신들이 빅브라더인 태국을 대신해 와족 연방군을 몰아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배경에는 쿤사 이후 상실한 이 지역의 지배권을 되찾겠다는 의도가 있다. 태국은 ‘더이후아마’로 이어지는 전기와 물은 물론 보급품의 수송경로를 모두 차단했다.
소수민족 연합의 전투력이 분산되길 바라는 미얀마 정부는 태국과 와족연방, 샨주 독립군의 충돌을 은근히 이용하며 18세에서 50세 여성에게까지 징집령을 내렸다. 만약 자녀가 군 복무를 거부하는 경우 대신 그 집안의 부모나 연장자가 군인으로서 복무해야 한다. 최근 태국 뉴스에서는 50~60세 여성과 12~15세 소년이 군사 훈련을 받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유됐다. 유엔에 따르면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발생 이후 4년 동안 6,200여 명이 사망했고, 미얀마 국민의 6%에 해당하는 350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고 한다.
미얀마 샨주에서는 주로 노약자와 병약한 이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늘고, 많은 지역에서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 일할 인력이 부족해 농장은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모든 것을 처분하고 태국으로 이주하여 결국 태국 사회에 종속된 삶을 살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태국 국경수비대나 경찰에 의해 불법 미얀마 난민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너무 많아, 이제 그 보도도 드물지만, 죽음을 피해 태국 국경을 넘는 이 슬픈 액소더스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전 세계의 관심이 이들에 대해 점점 무뎌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