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문화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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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겨울과 여름 방학이 되면 많은 한국 교회들이 성도들을 ‘단기선교’라는 이름으로 동역하는 선교지에 보낸다. 타 문화권 선교를 직접 경험해 보면서 믿음이 성숙해지길 바라는 목적이 크다. 대부분 교회는 현지 언어로 찬양과 율동, 전도용 드라마 공연, 악기연주, 또는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부채춤이나 사물놀이, 태권도 시범을 준비해 온다. 일부 팀은 육체노동을 통해 기간 안에 구체적 성과를 남기려 하기도 한다. 

선교사 처지에서는 유익해 보일지 모르지만,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건강한 세계화를 위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들이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 해외에 나오는데, 단지 내 선교사역의 범주 안에서만 머물다 돌아가는 것보다는 좀 더 다양한 문화를 듣고 보고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야겠다고 판단해, 그에 맞게 일정을 계획하고 진행했다. 물론 모두가 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자기들은 선교를 하려고 하는데, 선교사인 내가 선교에 열정이 없다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36년간 선교사로 살아오면서 깨달은 한가지는, 선교는 나의 변화가 먼저라는 진리다. 돌이켜보면 과거 나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보다는 내 열정에 취해 설교했던 경우가 많았다. 내가 속한 집단이 추구하는 방향에 몰입한 나머지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지 못했던 시절도 짧지 않다. 세상적인 동정과 주의 긍휼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 채 감정에 빠진 적도 많다. 

내가 감사하게 여기는 한 가지는, 적어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보다 더욱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다짐으로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글로 정리해 왔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지 목회자와 성도들이 이러한 삶의 자세를 배우길 바랐다. 현지 문화와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나는 ‘단기선교’라는 용어 대신 ‘선교지 문화탐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내 사역지를 방문하는 ‘단기문화탐방’팀에게는,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무엇을 배우고 경험할 것인지에 중점을 둘 것을 당부한다. 한국이란 문화의 옷을 입고 상대를 바라보고 판단하지 말고, 저들의 옷으로 갈아입고, 한국을 바라보길 바란다. 우리의 약함이나 부끄러움도 진솔하게 말하려 한다.

율동, 드라마, 부채춤, 음식 만들기, 노동사역 등 과도한 준비보다는 아카펠라 몇 곡을 잘 준비해 오라고 요청한다. 이왕 나오는 해외여행,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리며 배우라고 권한다. 현장에 도착하면 “듣고, 보고, 생각하고, 메모하고 말하라”라는 말을 매일 반복한다. 또한, 날마다 느끼고 깨달은 바를 A4 용지 한 장 분량으로 정리하도록 한다. 이를 돕기 위해 장소와 상황에 맞는 강의 20여 개를 준비해 나누고 있다.

식사는 길거리 음식부터 고급 식당까지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숙소도 하루 정도는 현지 교회나 공동체에서 머물지만, 나머지는 적당한 호텔에서 쉴 수 있게 한다. 현지 삶의 모습도 재래시장부터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체험해 보길 바란다. 이런 부탁을 성실히 이행하는 교회들에서는 큰 시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태국 북부는 1월과 2월에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 거리가 많다. 지난주에도 한 한국 교회의 중고등부 팀이 예정했던 현지 공동체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대신 소수 부족의 축제에 참여하도록 했다. 공동체는 다음 기회에도 방문할 수 있지만 이러한 축제는 정해진 기간에만 열리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면 다시 경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선교 현장을 통해 세계를 더욱 깊고 넓고 바르게 배우고, 동시에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닫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를 자신의 사역의 틀 안에 가두려 하기보다, 한국 성도들과 함께 스스로의 변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용기를 내길 희망한다. 

팀 인솔자들이 아침과 저녁에 긴 시간 자체 모임에 치중하느라, 진정으로 보고 체험해야 할 현지 문화를 놓치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다. 그 결과, 현지 문화를 왜곡하고 싸구려 동정심을 복음 전도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는 변화되지 않은 자신을 모르고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자학적 열정에 불과하다. 

한국 교회가 사회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더라도 이를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상에 안주하지 않고 넓고 편안한 길에서 벗어나 좁고 불편하더라도 의의 길로 돌아서는 계기로 삼기를 희망한다. 침체한 교회가 ‘선교지 문화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성도들의 영성을 일깨우고, 성도들이 하는 일의 연장과 확장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길 기대한다. 

선교사는 영적 신분이 주는 권위 속에 자신의 무능을 감추려 하지 말고, 위선의 옷을 벗어야 한다. 나는 이 일이 아니면 가정을 책임질 수도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부름을 받았음에 감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거룩하게 변화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총체적 선교의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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