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우선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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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근원은 작은 샘이나 빙하가 녹으며 떨어지는 물방울이다. 그 샘에서 물이 솟지 않거나 빙하를 녹이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없으면 강물은 마르고 만다. 기독교의 역사를 이어온 복음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 보혈의 샘에서 솟아나는 사랑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물방울이 기독교의 생명력이자 재생산의 유일한 원천이다. 

생명의 재생산은 자기 변화에 의해서만 이어진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자신을 변화시킨 곳에서만 생명의 샘은 솟아난다. 생명수가 흐르는 교회만이 타락을 피할 수 있다. 자기 변화 없이 모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분리되어 무질서해지고 사회악의 근원으로 변질한다. 한국교회는 주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스스로 위기를 초래했다. 

건강한 복음의 생태계에는 변화된 자신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한국교회가 다시 생명수를 품어내는 생명의 샘이 되려면,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바탕으로 목사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설교하며 세상의 가치관과 구별되는 하나님 나라의 의를 가르치고 구하며 실천해야 한다.

사명을 가지고 사회를 개혁하고 낯선 세계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타인을 변화시키라는 주장보다는, 자기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탐심을 통제하고 위선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내면의 변화를 강조해야 한다. 듣기 좋은 말만으로는 속사람을 변화시키기 어렵다. 죄로 두꺼워진 양심의 각질을 뚫어 벗겨낼 복음은 예리하여 듣기에 불편하지만, 참 평화를 맛보게 한다. 

나는 36년째 선교사로 살면서 한국교회 회복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선교의 위기는 선교현장보다 모교회로부터 시작된다. 교회가 어려우면 가장 먼저 선교비부터 중단하게 된다. 동시에 침체에 빠진 교회를 회복하는 최후의 방법처럼 선교를 말하기도 한다. 

회복의 우선순위는 재생산의 가능성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해외선교가 재생산의 가능성이 더 높다면 거기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국교회도 회복될 수 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은, 복음은 끝없이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 전도의 대가를 기대하라거나 복음의 역수출적 강요는 없다.

해외선교가 침체한 한국교회를 회복시키는 비장의 카드처럼 언급되고 연약한 성도들을 자극하는 선동의 이면에는 말씀에 대한 무지와 이기적인 삶이 반영되어 있다. 목사나 선교사가 자기 변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가 하는 목회나 선교는 최후 일회용 소비성이 되고 만다. 

선교의 의의에는 재생산이 어려운 자가, 선교현장에서 자기 변화를 이루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재생산의 가능성이 희박한 소비성 일을 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해서 강의 근원인 샘을 고갈시키는 것은 유혹이다. 한국교회가 해외선교지에 센터를 세우고 건물을 짓는 것을 교회 회복의 돌파구로 삼기보다, 농어촌교회와 도시 개척교회를 살리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강도 만나 죽게 된 농어촌교회와 도시개척교회들이다. 열정적으로 섬기고 봉사했으나 말씀의 고갈로 지친 성도들이다. 가족 같은 작은 교회가 좋았는데, 너무 투명하다 보니 성도들이 쉽게 상처받고, 차마 하나님은 떠날 수 없어 스며 들어간 곳이 대형교회다. 대형교회 목사들은 상처받은 교회들을 살리는 일을, 주님의 왼편에 속한 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섬겨서 살려야 한다. 이는 해외선교나 다른 사회적 역할 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무너져가는 농어촌교회나 도시 개척교회 하나를 살리면 해외선교지 여러 곳을 지속해서 도울 수 있지만, 해외에 많은 자금을 투자해 센터와 교회당을 건축해도 선교사 한 사람의 노후를 책임져 줄 수 있는 선교지를 찾기는 어렵다. 한국교회가 선교의 샘인 한국교회를 살리려 하기보다 재생산 가능성이 희박한 해외선교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농어촌교회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도시교회 개척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은 복음이 아닌 탐심의 극치다.

기독교의 생명력은 전도와 선교다. 건강한 전도와 선교는 자기 변화를 통해 이어지는데, 부패한 기독교 역시 전도와 선교 속에 그의 숙주를 뿌리 내리고 있다. 한국교회 침체의 영향력을 가장 먼저 받는 곳이 선교이고, 가장 늦게까지 그 영향력 속에 살아 있을 곳도 선교라고 본다. 불길한 예감은 재생산 가능한 선교사가 최후의 소비성 선교사보다 먼저 버림받을 것 같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을 더 바르고 깊고 넓게 알려고 노력하기보다 세상의 부귀영화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농어촌교회와 도시개척교회는 이 땅에 임하신 하나님 나라를 지키는 하나의 성이자 큰 성벽을 지탱하는 벽돌 하나와 같다. 변방의 작은 성이 무너지면 큰 성도 무너지고, 성벽을 지탱하는 작은 돌 하나가 빠지면 아무리 튼튼한 성벽도 허물어지고 만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솔로몬의 성전에 계시지 않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자의 마음에 계신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손을 들어 오른뺨을 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고, 나에게 속옷을 빌려달라고 할 만큼 친근한 사이이며, 나에게 오리만 같이 가달라고 떼쓰는 자이다. 그런데 그들이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되었다. 이들을 치료해주고 돌보아주는 것이 낯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사랑이다.

주변에 어려움에 처한 교회는 없는지 찾아보고, 민망히 여기는 마음으로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며,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는 회복 운동이 한국교회 안에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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