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너머, 흔들리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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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너머, 흔들리는 땅

태국 북부와 미얀마 국경에서 이민국과 세관이 있는 곳은 모두 교통의 요지다. 이곳은 미얀마를 통해 인도와 중국으로 이어지는 관문이고, 태국을 통해 동남아로 이어지는 길목이기도 하다. 이 길들은 오늘의 국경선이 정해지기 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왕래하던 곳이다. 여러 종족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원시와 최첨단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다.

나는 치앙라이와 치앙마이에 이민국과 세관이 있는 6곳의 국경을 가 보았다. 그중 외국인이 실제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은 두 곳뿐이다. 나머지 국경은 국경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통로이자 소규모 무역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그나마 이 국경 문들도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굳게 닫혔고, 그 내부 사정은 알 길이 없다. 녹슨 철조망은 잡초가 덮고 있어 엿보기도 어려워졌다. 

그 사이, 태국 국경 인근의 미얀마 마을들에는 중국인이 급속히 늘었다. 이들로 인해 카지노와 사기성 콜센터가 급증했다. 태국에서는 이들을 ‘찐타우’, ‘회색 중국인’이라 부른다. 이들이 중국인을 비롯한 세계 각국 사람들을 납치해 강제로 각종 사기를 벌이면서, 태국은 국경을 더욱 굳게 닫았다. 그 피해는 이들과는 무관하게 밀림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어느 날,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태국 ‘끼우파웤’과 미얀마 ‘나꼬무’를 잇는 국경에서 하루 동안만 시장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장은 지난해에 이어 열린 특별한 행사였다. 평소에는 허름한 대나무 담장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곳이다. 이곳까지 오는 차량은 마약 관련 여부로 의심받아 검문도 철저하다. 행여 길을 잘못 들어 주변 망고밭이라도 들어갔다 나오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태국 국경 검문소에서 미얀마 국경 철문까지는 500m 떨어져 있다. 국경 철문 앞에는 나무로 지은 태국 이민국과 세관이 있다. 색 바랜 나무 건물이 닫힌 국경의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철문 너머 미얀마 쪽 국경은 약간 언덕진 곳을 진지 삼아 대나무를 창처럼 깎아 세운 방어벽이 전부다. 그곳에는 미얀마 정부군이나 공무원은 없다. 대신 미얀마 소수민족 부대 중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와족 연합부대(UWSA)가 점령하고 있다.

시장은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다고 했다. 나는 오전 9시가 조금 지나 도착했다. 태국 국경 검문소에서 약 500m 전방까지 차들이 길게 들어서 있었다. 평소엔 까다롭던 국경 수비대원들도 이날만큼은 친절한 안내원이 되었다. 장에 나온 상인 대부분은 태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조촐한 축하 행사와 체육대회에 동원된 사람은 미얀마 ‘타이르족’과 ‘라후족’들이었다. 태국 의사와 간호사들은 미얀마 주민들을 위해 건강진료를 도와주고, 농업 기술과 특산품 생산 방법도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국경의 철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었고, 국경 철문 100m 전방부터는 접근도 금지되었다. 사진 촬영 역시 통제되었다. 미얀마 사람들을 위한 시장이라지만, 그들이 어떻게 오는지조차 의문이었다. 미얀마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태국 말을 알아들은 한 미얀마 주민이 밀림을 가로질러 샛길로 1시간 정도 걸어왔다고 말한다. 

그때, 작은 철문 쪽에 태국 수비대와 이민국 직원들 대여섯 명이 나와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앞을 막는 국경 수비대 병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미얀마에서 VIP 가족이 온다”고 말했다. 곧 미얀마 쪽에서 하얀 티셔츠에 반바지, 슬리퍼 차림의 중년 남자가 몇 명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죽창 진지를 지나 태국 국경을 통과하고 있었다. 180cm 정도의 키에 약간 튀어나온 배를 뒤뚱거리며, 경호원인 듯한 자들과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걷는 모습은 저 죽창 진지 너머의 삶을 상상하게 했다.

이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국적은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은 국적에 대한 정체성보다 지역 토호 세력에 대한 소속감을 더 강하게 느끼며 산다. 특히 미얀마 국경선 안쪽 주민들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정상적인 국가 질서 속에서 살아본 적이 없지 않나 싶다.

종족 사회에서 식민 지배 사회로, 다시 이념 대립과 황금만능주의로, 이제는 이기적 민족주의자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이 땅. 그 안에는 우리가 돌보고 있는 아이들, 30여 명이 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차를 타고 태국 초소를 지났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단순히 타이어가 터진 줄 알았지만, 곧 약 300km 떨어진 만달레이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조금 전까지 보고 온 대나무 담장 너머,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곳 국경 너머의 삶도, 보이지 않는 지층처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긴장 속에 놓여 있다. 국경선은 고정되어 있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불안하고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묵묵히 길을 찾고, 이름 없는 아이들은 조용히 자라난다.

굳게 닫힌 철문을 사이에 두고, 언어도 제도도 다른 세계 속에서 서로를 향해 다가가려는 사람들. 그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아직 희망을 본다. 국경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삶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그 경계 위에서 흔들리는 이 땅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오늘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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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AJyu5Azf6E?si=kP5mnYLem6ehZE3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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