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4일 제29회 세계한국어웅변대회가 베트남 호치민 국립대학교에서 있었다. 16년 동안 이 무대를 지켜보며, 나는 매년 새로운 배움을 얻었다.
처음 몇 해는, 기회가 적은 치앙마이 한인 자녀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어쩌면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그 아이들을 통해 이어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며 애정은 더 깊어졌다. 이제는 웅변이 한국과 한국어, 그리고 한국 문화를 세계에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 바람은 한 번도 내 마음을 떠난 적이 없다.
이번 대회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고, 처음으로 발을 들인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도 나와 같은 기대가 있음을 느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관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꿈을 키우기 때문이다.
지난 28회와 이번 29회 대회에서 나는 전체 사회를 맡아, 무대 뒤편에서 연사들의 뒷모습과 청중의 표정을 동시에 바라보며, 대회를 감상하는 특권을 누렸다.
그리고 하나의 변화를 뚜렷이 보았다. 한국인 연사들의 열정은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지만, 외국인 연사들의 열정은 오히려 더 뜨겁게 타올랐다. 그들은 한국어와 함께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며,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까지 섬세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 팥죽을 끓여 파는 69세 조인숙 여사다. 52년 전, 학생 시절 웅변을 했던 그는,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어 다시 웅변에 도전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팥죽 속에 녹여내어, 청중과 세계 앞에 ‘숨겨진 한류의 보석’처럼 내놓았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삶, 그리고 양평 두물머리라는 작은 마을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의 웅변은 각진 호소문이 아니라, 수필 같고 수채화 같은 부드러운 감성이 묻어났다. 시대의 변천 속에서 웅변의 강점이 약점이 되어버린 부분을 아름답게 보완해준 웅변이었다.
두 번째는 영국에서 온 58세 여성 '린디'다. 그는 한글을 배우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는 엄마, 딸, 아내로만 불리는 많은 중년 여성들을 대신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 저는 엄마도, 딸도, 아내도 아닙니다. 그냥 '린디'입니다. 한국어를 배우며, 30년 동안 잊고 있던 저 자신을 찾았습니다.”
서툰 발음이었지만, 그가 전하려는 진심은 절제된 목소리와 표정, 눈빛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내와 엄마로만 살아온 삶에서, 한글은 그녀에게 ‘자아’라는 이름을 다시 붙여준 것이다.
올해 대회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기쁨은, 기성세대가 웅변을 통해 오랜 꿈을 다시 이루어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모습은 이 시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웅변을 통해 마음속에 오래 남을 추억을 쌓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 주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사회자로서 청중이 지치지 않도록 분위기를 이끄는 일은 나의 몫이었다. 그 자리에서 보니 우리의 약함도 보였다.
그 자리에는 받기만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고, 나누고 섬기는 데서 기쁨과 보람을 찾는 사람도 있었다.
29년 역사의 배경에는, 채움보다 비움과 나눔에서 만족을 누리는 이들의 헌신이 있었다. 그들의 값진 희생을 나는 이기적으로 누리려만 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다.
이제 나는, 연사 선발이나 연습, 내 연사의 등수와 관계없이 그곳의 빈곳을 보충해주는 조연자로 살아가려고 한다.






지난 8월 14일 제29회 세계한국어웅변대회가 베트남 호치민 국립대학교에서 있었다. 16년 동안 이 무대를 지켜보며, 나는 매년 새로운 배움을 얻었다.
처음 몇 해는, 기회가 적은 치앙마이 한인 자녀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어쩌면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그 아이들을 통해 이어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며 애정은 더 깊어졌다. 이제는 웅변이 한국과 한국어, 그리고 한국 문화를 세계에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 바람은 한 번도 내 마음을 떠난 적이 없다.
이번 대회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고, 처음으로 발을 들인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도 나와 같은 기대가 있음을 느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관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꿈을 키우기 때문이다.
지난 28회와 이번 29회 대회에서 나는 전체 사회를 맡아, 무대 뒤편에서 연사들의 뒷모습과 청중의 표정을 동시에 바라보며, 대회를 감상하는 특권을 누렸다.
그리고 하나의 변화를 뚜렷이 보았다. 한국인 연사들의 열정은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지만, 외국인 연사들의 열정은 오히려 더 뜨겁게 타올랐다. 그들은 한국어와 함께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며,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까지 섬세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 팥죽을 끓여 파는 69세 조인숙 여사다. 52년 전, 학생 시절 웅변을 했던 그는,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어 다시 웅변에 도전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팥죽 속에 녹여내어, 청중과 세계 앞에 ‘숨겨진 한류의 보석’처럼 내놓았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삶, 그리고 양평 두물머리라는 작은 마을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의 웅변은 각진 호소문이 아니라, 수필 같고 수채화 같은 부드러운 감성이 묻어났다. 시대의 변천 속에서 웅변의 강점이 약점이 되어버린 부분을 아름답게 보완해준 웅변이었다.
두 번째는 영국에서 온 58세 여성 '린디'다. 그는 한글을 배우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는 엄마, 딸, 아내로만 불리는 많은 중년 여성들을 대신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 저는 엄마도, 딸도, 아내도 아닙니다. 그냥 '린디'입니다. 한국어를 배우며, 30년 동안 잊고 있던 저 자신을 찾았습니다.”
서툰 발음이었지만, 그가 전하려는 진심은 절제된 목소리와 표정, 눈빛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내와 엄마로만 살아온 삶에서, 한글은 그녀에게 ‘자아’라는 이름을 다시 붙여준 것이다.
올해 대회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기쁨은, 기성세대가 웅변을 통해 오랜 꿈을 다시 이루어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모습은 이 시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웅변을 통해 마음속에 오래 남을 추억을 쌓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 주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사회자로서 청중이 지치지 않도록 분위기를 이끄는 일은 나의 몫이었다. 그 자리에서 보니 우리의 약함도 보였다.
그 자리에는 받기만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고, 나누고 섬기는 데서 기쁨과 보람을 찾는 사람도 있었다.
29년 역사의 배경에는, 채움보다 비움과 나눔에서 만족을 누리는 이들의 헌신이 있었다. 그들의 값진 희생을 나는 이기적으로 누리려만 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다.
이제 나는, 연사 선발이나 연습, 내 연사의 등수와 관계없이 그곳의 빈곳을 보충해주는 조연자로 살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