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한글학교 협의회의 정관을 만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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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간 태국 한글학교 협의회 정관을 만드는 일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동안 정관 없이도 유일한 사역인 교사연수회는 재외동포청의 지원을 받아 각 학교가 돌아가며 해왔다. 코로나19로 일시 정지 상태인 이 행사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선뜻 나서는 학교가 없다.

코로나 전의 기록을 가지고 다음 학교가 순서를 이어가면 가장 무난할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군가 제안했는지 지난해 아시아 한글학교 교사연수회에서 각 학교 대표들이 모여 제비뽑기로 행사 주관 학교를 선정했는데 우리 학교가 첫 번째가 되었다.

부담스러워 피하고 싶었는데, 실무 책임자인 교감 선생님이 힘들어하는 걸 보고 나를 이겨야 했다. 협의회 회원들에게 협의회 정관, 그동안 해왔던 사업 내용, 회계 장부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걸 보면 내가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그런데 협의회의 기준이 되는 정관도 기록도 없다. 그동안 경비를 지원해준 정부 기관에 영수증 처리만 해왔던 모양이다.

나는 정관부터 만들겠다고 했다. 약 3주 전에 정관을 위한 첫 협의회 모임을 공지했는데, 협의회 회원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고 모두 위임장을 보내왔다. 3주 동안 준비한 정관 초안을 가지고 아내와 둘이서 낯선 방콕에 내려갔다. 다음 날 담당 공무원 두 명의 도움을 받으며 4시간 동안 정관 초안을 정리했다.

내가 준비해 간 정관 초안 중 학교 신설 규정에, “교실 임대료가 재외동포청 지원금의 20%를 넘지 않아야 한다.”라는 문구에 담당 공무원이 헛웃음을 웃었다. 이런 규정에 합당한 학교는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글학교를 관리 감독하는 자 편에서는 100% 다 임대료로 사용하는 게 더 진실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임대계약서 만큼 확실한 영수증을 대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원금의 50%를 교사들을 위해 사용하게 돼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또 정관 내용 중에 “본회의 회원학교는 일정한 회비를 낼 의무가 있다”라는 문구 앞에서, 이게 협의회 회원들의 동의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표했다. 나는 회원학교들의 자발적 희생이 우선할 때, 떳떳하게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보는 이들의 마음도 공감할 수 있으니, 내가 회원들을 설득하겠다고 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자기희생에 대해 참 민감하단 걸 알았다. 나는 교육과 문화는 영리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나는 나의 세 아들과 가르치는 학생들, 또는 교회 성도들에게, 여러분이 세상을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이유가 뭐냐고 누군가 물으면, 나의 수고를 통해 건강하고 공평한 교육과 문화 현장을 만들고, 고용창출을 위해서라고 가르쳤다.

나에게 치앙마이 한글학교는 내가 절약하며 좀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고, 나의 나머지 에너지를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기쁘게 투자하는 곳이며, 내가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긍지였다. 나에게 학생들은 희망의 샘이면서 동시에 그들은 내 삶의 감시자이기도 하다. 어쩌면 저들에게 이런 나는 이상주의자일지 모르겠다.

나는 정부산하 단체가 주관하는 세계 한글학교 교장단 연수회와 아시아 한글학교 교사연수회에 딱 한 번씩만 참석했다. 자주 가다 보면 나름 지켜온 가치관에 혼란이 올 것 같아서다. 물론 우리 선생님들은 가능한 참석하여 배우고 쉼도 얻길 바라며 권한다. 한번은 미자격자인데 원해서 보낸 적이 있었다. 사실은 개인의 어떤 목적을 위한 속셈이었던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일부 조항의 정관에 관하여서 함께 돕던 공무원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런 조항들을 정관에 넣고 싶은 이유는, 현재의 교육 현장과 그 산하 단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그들 문화가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게 하도록 나 자신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어제 아침 9시 12분, 정관 통과를 선포했다. 잠시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어지럽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걸어도 느낌이 없다. 아내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백화점 전기 안마의자에 누워도 모든 게 희미하다.

한국에서 온 친구를 만나 평소 잘 먹지 않은 저녁을 좀 든든히 먹었더니 조금 나아졌다. 나의 주관을 조금은 양보하고 누군가에 대한 기대도 일부 버리고, 더 인내하고 버터야 하는데, 나 자신과 싸우는 에너지가 자꾸 약해진 것 같아 두렵다. 내 욕망의 힘이 아닌, 하나님께서 내가 감당하기를 바라시는 힘으로 지혜롭게 이겨나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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