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는 사람들과 함께 쌓아온 정이란 추억이 있고, 시각 속에 멈추어 선 다채로운 추억이 있으며, 후각 저 깊은 한 곳에 살짝 묻어 있다가 스치는 자극에도 온몸이 반응하는 추억도 있다. 고향은 같은 것을 함께 보고, 같은 맛을 함께 느꼈던 친구가 있는 곳이다. 나는 그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태국에서의 추억도 되새겨보려 한다.
나의 태국에 대한 인상은 90년, 처음 태국에 와서 방콕에서 약 1년간 태국어 공부를 할 때 쌓인 추억 속에 있다. 철이 들고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온 새로운 삶이어서인지, 어린 시절 고향 친구들과 같은 편안한 추억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대신, 사철 뜨거운 자연환경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의 모습이 내 시각에 선명하게 찍히고 촬영되어 추억 공간에 저장되어있다. 그들이 흘린 땀내 속에 묻어나던 삶의 애환들이 내 후각 저 깊은 곳에 스며 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버거워질 때는 그 모습과 향을 떠올려 본다.
후각 속에 자리한 추억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태국 어디에나 있는 아침 재래시장에 변치 않고 남아있어, 마음만 먹으면 그 정겨움을 회복할 수 있다. 지난 21일 주일 예배를 마치고 오랫동안 내 시각에 멈추어있는 추억을 찾아 떠났다. 한번 만나자고 성화인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추억의 저장소를 찾고 싶은 마음도 컸다.
91년 태국 대학생들의 집단시위로 방콕이 극도로 혼란스러워지자 관광객이 멈췄다. 그때 방콕에서 한 여행사를 하는 권사님이, 라용에 있는 리조트를 예약한 손님이 못 오시게 되었는데, 대신 가서 2박 3일 쉬고 오라며 차까지 제공해 주었다.
바닷가 야트막한 산기슭에 자리한 리조트는, 현대와 고전이 적당히 어우러져 있었다, 투숙객은 우리 부부 외 두서너 명이 전부였다. 6층 객실 창문을 열면 바람과 파도가 방으로 밀려오곤 했는데 그 화음은 귓가뿐만 아니라 가슴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묘한 화음이었다.
반대쪽 바다는 파도가 잔잔했다. 얕은 바다 위로 나무다리가 세워져 있는데 그 다리를 지나갈 때는 마치 수족관 위를 걷는 듯했다. 꿈 같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언어 공부를 마치고 첫 사역을 치앙라이에서 시작한 후 지금껏 북쪽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7시간을 운전해 아유타야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날 통통배를 타고 한 시간가량 아유타야 고도를 둘러본 후, 내 추억의 사진첩에 여전히 선명한 라용리조트를 찾아갔다. 야자수와 조경수들이 높이 자라, 창문을 가리는 것 말고는 대부분의 자연환경은 그대로였다. 6층 객실 창문을 열자 밀려오는 바람과 파도 소리가 30년 세월을 무색하게 했다.
혹시라도 그때 그 물고기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며, 그때처럼 아내와 함께 나무다리 위를 걸었다. 물고기도 하얀 모래도 보이지 않았다. 긴 비치가 이어지는 바닷가인데, 바다 생선을 요리하는 가게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라용리조트 입구에서 짐을 들어주는 사환도, 로비에서 체크인을 돕는 호텔직원도, 식당과 커피숍에서 일하는 종업원들도 모두 중년을 지나는 아줌마들이다. 아침을 먹으며 서비스하는 아줌마에게 자연은 늙지 않았는데, 일하는 사람들만 늙어간다고 했더니, 자기도 여기서 20년 넘었다면서 웃는다. 그날도 여전히 손님은 몇 되지 않았다.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서며 프런트 사무를 보는 아줌마에게 “30년 뒤에 또 온다면 그때도 뵙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했다. 라용리조트와는 달리 파타야 해변에 있는 숙소에는 대부분 젊은 종업원들이었다. 나는 자연에서 평안을 얻는데, 젊은이들은 문명의 숲에서 평안해 보였다.
사실 이번 쉼의 가장 큰 동기는 파타야에서 고등학교 교정에서 사춘기를 함께 고민했던 친구들과 만나기로 해서다. 40년 넘게 만나지 못했던 친구지만 교정을 오가며 사춘기를 함께 한 탓인지 부담 없고 편안했다. 친구들과 하루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동북부 중심지 컨껜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호텔을 예약했다. 컨껜은 처음이다. 약 8시간 운전했지만 내가 사는 치앙마이나 치앙라이와는 또 다른 풍경, 몇 시간을 가도 산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고원의 힘이 피곤을 잊게 했다.
호텔은 컨껜 시내에 있는 28층 건물로 우리는 24층에 머물렀다. 사방이 탁 트인 도시다. 저 멀리 태국의 공산화를 막는 데 큰 힘이 되었던, 자연 방어선 ‘남나우’ 산맥과 ‘러이’의 고원, ‘푸힌렁끌라’와 ‘카우커’로 빠지는 역사 능선의 실루엣이 이어진다.
35년 전 방콕은 물론이고 태국에는 지금 같은 커피숍이 없었다. 사람을 만나려면 호텔 로비나 식당으로 가야 했다. 방콕에서 언어 공부하던 때, 사람을 만날 일이 있거나 낯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느라 호기심에 가끔 찾았던 곳이 ‘샹그릴라’ 호텔 커피숍이다. 종업원의 친절함에 더하여 인도네시아 출신 남성 4인조의 음악이 참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세월이 흐르며 다양한 커피문화가 우후죽순, 온 나라에 걸쳐 퍼졌지만, 그때의 태국 사람들의 미소와 친절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여행지에서 아침 식사는 사람을 기대에 부풀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컨깬 호텔에서 아침을 먹는데, “미소의 나라”에서 보았던 추억의 사진이 현실이 되어 있는 현장을 만났다. 35년 전 샹그릴라에서 만났던 미소와 친절한 태국 문화가 이곳 컨깬에 한층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사방이 뻥 뚫린 스카이라운지에서 일하는 젊은 종업원들의 멋스럽고도 편안한 복장과 친절함, 그곳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이 마음을 경쾌하게 해주었다. 복잡한 치앙마이에 비해 평온해 보였고, 태국의 다른 곳에 비해 태국인의 정겨운 모습이 더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한국 식당에도 한국인보다는 현지인이 더 많았다. 아쉬운 점은 이곳을 찾는 한국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핏싸눌록’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았다. 친구 사이인 듯 보이는 두 부부가 또래 딸 하나씩을 데리고 식사를 하고 있다. 외국 남자와 태국 엄마 사이에 태어난 아이와 태국 부부 사이의 아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감정이 통하다 보니 친구가 되어 놀고 있다.
어른들은 미사여구에 자신들이 가진 온갖 지식을 사용하지만,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고 친구가 되기는 쉽지 않다. 여행은 아침에 출발하는 길이 낯설고 긴 시간이 필요한 길이라도 두렵거나 염려되지 않은데. 사역지로 돌아가는 길은 무겁다.
추억에는 사람들과 함께 쌓아온 정이란 추억이 있고, 시각 속에 멈추어 선 다채로운 추억이 있으며, 후각 저 깊은 한 곳에 살짝 묻어 있다가 스치는 자극에도 온몸이 반응하는 추억도 있다. 고향은 같은 것을 함께 보고, 같은 맛을 함께 느꼈던 친구가 있는 곳이다. 나는 그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태국에서의 추억도 되새겨보려 한다.
나의 태국에 대한 인상은 90년, 처음 태국에 와서 방콕에서 약 1년간 태국어 공부를 할 때 쌓인 추억 속에 있다. 철이 들고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온 새로운 삶이어서인지, 어린 시절 고향 친구들과 같은 편안한 추억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대신, 사철 뜨거운 자연환경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의 모습이 내 시각에 선명하게 찍히고 촬영되어 추억 공간에 저장되어있다. 그들이 흘린 땀내 속에 묻어나던 삶의 애환들이 내 후각 저 깊은 곳에 스며 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버거워질 때는 그 모습과 향을 떠올려 본다.
후각 속에 자리한 추억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태국 어디에나 있는 아침 재래시장에 변치 않고 남아있어, 마음만 먹으면 그 정겨움을 회복할 수 있다. 지난 21일 주일 예배를 마치고 오랫동안 내 시각에 멈추어있는 추억을 찾아 떠났다. 한번 만나자고 성화인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추억의 저장소를 찾고 싶은 마음도 컸다.
91년 태국 대학생들의 집단시위로 방콕이 극도로 혼란스러워지자 관광객이 멈췄다. 그때 방콕에서 한 여행사를 하는 권사님이, 라용에 있는 리조트를 예약한 손님이 못 오시게 되었는데, 대신 가서 2박 3일 쉬고 오라며 차까지 제공해 주었다.
바닷가 야트막한 산기슭에 자리한 리조트는, 현대와 고전이 적당히 어우러져 있었다, 투숙객은 우리 부부 외 두서너 명이 전부였다. 6층 객실 창문을 열면 바람과 파도가 방으로 밀려오곤 했는데 그 화음은 귓가뿐만 아니라 가슴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묘한 화음이었다.
반대쪽 바다는 파도가 잔잔했다. 얕은 바다 위로 나무다리가 세워져 있는데 그 다리를 지나갈 때는 마치 수족관 위를 걷는 듯했다. 꿈 같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언어 공부를 마치고 첫 사역을 치앙라이에서 시작한 후 지금껏 북쪽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7시간을 운전해 아유타야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날 통통배를 타고 한 시간가량 아유타야 고도를 둘러본 후, 내 추억의 사진첩에 여전히 선명한 라용리조트를 찾아갔다. 야자수와 조경수들이 높이 자라, 창문을 가리는 것 말고는 대부분의 자연환경은 그대로였다. 6층 객실 창문을 열자 밀려오는 바람과 파도 소리가 30년 세월을 무색하게 했다.
혹시라도 그때 그 물고기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며, 그때처럼 아내와 함께 나무다리 위를 걸었다. 물고기도 하얀 모래도 보이지 않았다. 긴 비치가 이어지는 바닷가인데, 바다 생선을 요리하는 가게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라용리조트 입구에서 짐을 들어주는 사환도, 로비에서 체크인을 돕는 호텔직원도, 식당과 커피숍에서 일하는 종업원들도 모두 중년을 지나는 아줌마들이다. 아침을 먹으며 서비스하는 아줌마에게 자연은 늙지 않았는데, 일하는 사람들만 늙어간다고 했더니, 자기도 여기서 20년 넘었다면서 웃는다. 그날도 여전히 손님은 몇 되지 않았다.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서며 프런트 사무를 보는 아줌마에게 “30년 뒤에 또 온다면 그때도 뵙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했다. 라용리조트와는 달리 파타야 해변에 있는 숙소에는 대부분 젊은 종업원들이었다. 나는 자연에서 평안을 얻는데, 젊은이들은 문명의 숲에서 평안해 보였다.
사실 이번 쉼의 가장 큰 동기는 파타야에서 고등학교 교정에서 사춘기를 함께 고민했던 친구들과 만나기로 해서다. 40년 넘게 만나지 못했던 친구지만 교정을 오가며 사춘기를 함께 한 탓인지 부담 없고 편안했다. 친구들과 하루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동북부 중심지 컨껜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호텔을 예약했다. 컨껜은 처음이다. 약 8시간 운전했지만 내가 사는 치앙마이나 치앙라이와는 또 다른 풍경, 몇 시간을 가도 산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고원의 힘이 피곤을 잊게 했다.
호텔은 컨껜 시내에 있는 28층 건물로 우리는 24층에 머물렀다. 사방이 탁 트인 도시다. 저 멀리 태국의 공산화를 막는 데 큰 힘이 되었던, 자연 방어선 ‘남나우’ 산맥과 ‘러이’의 고원, ‘푸힌렁끌라’와 ‘카우커’로 빠지는 역사 능선의 실루엣이 이어진다.
35년 전 방콕은 물론이고 태국에는 지금 같은 커피숍이 없었다. 사람을 만나려면 호텔 로비나 식당으로 가야 했다. 방콕에서 언어 공부하던 때, 사람을 만날 일이 있거나 낯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느라 호기심에 가끔 찾았던 곳이 ‘샹그릴라’ 호텔 커피숍이다. 종업원의 친절함에 더하여 인도네시아 출신 남성 4인조의 음악이 참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세월이 흐르며 다양한 커피문화가 우후죽순, 온 나라에 걸쳐 퍼졌지만, 그때의 태국 사람들의 미소와 친절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여행지에서 아침 식사는 사람을 기대에 부풀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컨깬 호텔에서 아침을 먹는데, “미소의 나라”에서 보았던 추억의 사진이 현실이 되어 있는 현장을 만났다. 35년 전 샹그릴라에서 만났던 미소와 친절한 태국 문화가 이곳 컨깬에 한층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사방이 뻥 뚫린 스카이라운지에서 일하는 젊은 종업원들의 멋스럽고도 편안한 복장과 친절함, 그곳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이 마음을 경쾌하게 해주었다. 복잡한 치앙마이에 비해 평온해 보였고, 태국의 다른 곳에 비해 태국인의 정겨운 모습이 더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한국 식당에도 한국인보다는 현지인이 더 많았다. 아쉬운 점은 이곳을 찾는 한국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핏싸눌록’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았다. 친구 사이인 듯 보이는 두 부부가 또래 딸 하나씩을 데리고 식사를 하고 있다. 외국 남자와 태국 엄마 사이에 태어난 아이와 태국 부부 사이의 아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감정이 통하다 보니 친구가 되어 놀고 있다.
어른들은 미사여구에 자신들이 가진 온갖 지식을 사용하지만,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고 친구가 되기는 쉽지 않다. 여행은 아침에 출발하는 길이 낯설고 긴 시간이 필요한 길이라도 두렵거나 염려되지 않은데. 사역지로 돌아가는 길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