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토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은 6월 25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외곽의 남아공공군기념관에서 뜻깊은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식이 거행됐다. 쌀쌀한 남반구의 겨울 날씨 속에서도 100여 명의 유족과 후손, 공군 관계자, 외교단이 참석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한 영웅들의 넋을 기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 참전국 중 유일하게 **공군 부대(제2전투비행대대, 일명 '날으는 치타')**만을 파병한 국가이다. 1950년 11월 12일부터 1953년 10월까지 총 826명의 남아공 용사들이 한반도의 하늘을 누비며 대한민국을 수호했다. 이들은 주로 F-51D 무스탕 전투기와 이후 F-86F 세이버 전투기를 운용하며 북한 지역의 철교, 육교, 터널, 철도조차장 등을 폭격하는 차단작전을 수행,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특히 휴전이 임박한 시점에는 정찰을 위해 하루 41회 출격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 뒤에는 뼈아픈 희생이 따랐다. 826명의 참전용사 중 37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으며, 여기에는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고초의 후유증으로 귀국 후 11개월 만에 숨진 한 명의 용사도 포함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추모식에도 남아공 생존 참전용사는 단 한 명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는 세월의 흐름을 여실히 보여주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는 남쪽 케이프타운과 영국에 각각 거주하는 두 명을 포함해 단 4명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작년 6월 행사에는 3명의 생존 용사가 참석했으나, 피트 피세르 씨는 같은 해 11월 영면했고, 마이크 물러(95) 전 남아공 공군참모총장은 요양원에 들어갔다. 동부 콰줄루나탈주에 거주하는 아이반 홀스하우젠(95) 씨 또한 거동이 불편해 참석이 어려웠다.
이처럼 참전용사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날 추모식은 군목의 기도로 시작되었으며, 고 피세르 씨의 부인과 딸을 비롯한 유족과 후손들이 참석하여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특히 남아공 공군의 과거 전투기이자 현재 훈련기인 '하버드'가 행사장 상공을 낮게 비행하는 추모 비행은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추모식에 이어 인근 스와트코프 공군기지 내 공군박물관에서는 2부 행사가 진행됐다. 한식을 포함한 오찬과 함께 참전용사 후손에 대한 장학금 수여식이 마련되어, 미래 세대에게 참전용사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중요한 의미를 더했다. 더크 러우 남아공한국전참전용사협회장은 전사자 37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되새겼다.
양동한 주남아공 한국 대사는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은 참전용사와 그 가족의 고귀한 희생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1975년 9월 29일 대한민국 국방부는 남아공 공군 한국 전쟁 기념비를 건립했으며, 프리토리아 한국문화원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용사 826명 전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전 세계 한국문화원 중 유일하게 참전용사들의 투혼을 기리고 있다.
스와트코프 공군기지 공군박물관 내에는 48㎡ 규모의 한국전쟁기념관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조종복, 전투기 모형, 훈장, 그리고 참전용사들의 개인 소장품 등이 전시되어 있어, 남아공 참전용사들의 용감한 활동을 엿볼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국전 참전은 자유와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숭고한 정신의 발현이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은 한국의 자유와 번영의 초석이 되었으며, 양국 간의 끈끈한 우정과 협력 관계를 지탱하는 소중한 유산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프리토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은 6월 25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외곽의 남아공공군기념관에서 뜻깊은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식이 거행됐다. 쌀쌀한 남반구의 겨울 날씨 속에서도 100여 명의 유족과 후손, 공군 관계자, 외교단이 참석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한 영웅들의 넋을 기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 참전국 중 유일하게 **공군 부대(제2전투비행대대, 일명 '날으는 치타')**만을 파병한 국가이다. 1950년 11월 12일부터 1953년 10월까지 총 826명의 남아공 용사들이 한반도의 하늘을 누비며 대한민국을 수호했다. 이들은 주로 F-51D 무스탕 전투기와 이후 F-86F 세이버 전투기를 운용하며 북한 지역의 철교, 육교, 터널, 철도조차장 등을 폭격하는 차단작전을 수행,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특히 휴전이 임박한 시점에는 정찰을 위해 하루 41회 출격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 뒤에는 뼈아픈 희생이 따랐다. 826명의 참전용사 중 37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으며, 여기에는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고초의 후유증으로 귀국 후 11개월 만에 숨진 한 명의 용사도 포함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추모식에도 남아공 생존 참전용사는 단 한 명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는 세월의 흐름을 여실히 보여주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는 남쪽 케이프타운과 영국에 각각 거주하는 두 명을 포함해 단 4명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작년 6월 행사에는 3명의 생존 용사가 참석했으나, 피트 피세르 씨는 같은 해 11월 영면했고, 마이크 물러(95) 전 남아공 공군참모총장은 요양원에 들어갔다. 동부 콰줄루나탈주에 거주하는 아이반 홀스하우젠(95) 씨 또한 거동이 불편해 참석이 어려웠다.
이처럼 참전용사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날 추모식은 군목의 기도로 시작되었으며, 고 피세르 씨의 부인과 딸을 비롯한 유족과 후손들이 참석하여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특히 남아공 공군의 과거 전투기이자 현재 훈련기인 '하버드'가 행사장 상공을 낮게 비행하는 추모 비행은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추모식에 이어 인근 스와트코프 공군기지 내 공군박물관에서는 2부 행사가 진행됐다. 한식을 포함한 오찬과 함께 참전용사 후손에 대한 장학금 수여식이 마련되어, 미래 세대에게 참전용사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중요한 의미를 더했다. 더크 러우 남아공한국전참전용사협회장은 전사자 37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되새겼다.
양동한 주남아공 한국 대사는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은 참전용사와 그 가족의 고귀한 희생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1975년 9월 29일 대한민국 국방부는 남아공 공군 한국 전쟁 기념비를 건립했으며, 프리토리아 한국문화원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용사 826명 전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전 세계 한국문화원 중 유일하게 참전용사들의 투혼을 기리고 있다.
스와트코프 공군기지 공군박물관 내에는 48㎡ 규모의 한국전쟁기념관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조종복, 전투기 모형, 훈장, 그리고 참전용사들의 개인 소장품 등이 전시되어 있어, 남아공 참전용사들의 용감한 활동을 엿볼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국전 참전은 자유와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숭고한 정신의 발현이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은 한국의 자유와 번영의 초석이 되었으며, 양국 간의 끈끈한 우정과 협력 관계를 지탱하는 소중한 유산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